수행정진 한 길 걷는 원칙주의자
작성자  여울목 작성일  2016-11-23 am 10:05 출력하기 메일보내기

수행정진 한 길 걷는 원칙주의자

군더더기가 싫다

 

정채봉씨가 어느 한여름 낮 불일암을 찾았을 때였다. 하도 더운 날이라 이런 날은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이나 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암자로 들어서니 스님이 보이지 않았다. 낮잠을 주무시나 싶어 방 앞에 다가가 스님을 부르자 스님이 암자 뒤쪽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이 더운 날 뭘 하고 계셨습니까?”

 

스님의 대답은 이랬다.

 

졸음을 쫓느라 칼로 대나무를 깎고 있었습니다.”

 

졸음이 쏟아지는 한 여름날, 그것도 혼자 기거하는 암자에서 맑게 깨어 있기 위해 날카로운 칼로 대나무를 깎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 그 서슬 시퍼런 자기 감시. 정씨는 스님에게 그 순간보다 더 강렬하게 매료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스님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의 정도(正道)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다. 그만한 법랍이면 더러 곡차(穀茶)도 한두 잔 하고 가끔은 예불을 건너뛰는 융통성을 보일 만도 한데, 그는 지금도 변함없이 맥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혼자 살면서도 아침 저녁 예불을 빠뜨리지 않는다.

 

10여년 전 모친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 법정 스님은 불일암에서 안거(安居·스님들이 석 달 동안 사문 밖을 나가지 않고 수행하는 것)중이었다. 주변에서 임종을 지켜드리라고 하자 스님은 출가 이후 한번도 속가를 찾은 일이 없다. 하물며 지금은 안거중이지 않은가라며 절을 나서지 않았다.

 

다음날 모친이 그예 사망했다는 전갈이 오자 주변에선 이제는 가보셔야 하지 않겠느냐며 스님을 떠밀다시피 했다. 그러나 스님은 이미 돌아가신 분이 내가 간다고 살아오시겠느냐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홀로 목탁을 두드리며 기도만 올릴 뿐이었다. 대아(大我)를 위해 소아(小我)를 버리라는, 그래서 피붙이의 죽음에조차 초연하라는 계율에 묵묵히 따랐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후 인근의 한 스님이 부친상을 당하자 법정 스님은 이 스님을 데리고 함께 그의 속가로 내려가 염불을 하고 왔다. 스스로에겐 추상같이 엄격하면서도 다른 이들에겐 그렇듯 너그럽게 마음을 열어 보인다.

 

원칙을 중요시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하며 쉼 없이 수행정진하는 스님의 자세는 때로 차갑고 인정머리 없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가령 방문객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법당에 절이나 하고 그냥 가시오하며 매정하게 뿌리친다.

 

스님을 글로만 접해본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좀체 이해하지 못한다. 스님의 글이 품은 온기 때문에 그를 늘 우리 곁에서 따뜻한 말씀을 전해주는 부처의 분신쯤으로 여기는 탓이다.

 

언젠가는 지방에서 스님을 만나러 올라왔다가 외면당한 사람이 스님이 몇 시간이고 마주앉아 좋은 얘기를 들려주리라 기대했는데, 저렇게 박정한 분인 줄은 몰랐다며 발길을 돌렸다. 정채봉씨가 나중에 스님에게 이 말을 전했더니 스님은 허허 웃으며 때로는 인정이 없어야 하는 게 수행자다. 만나자는 사람 다 만나주면 내 공부는 언제 하라는 말이냐고 했다. ‘인정이 많으면 도심(道心)이 성글다는 옛 선사들의 가르침 그대로였다.

 

누군가 예고 없이 찾아와 말을 시키면 스님은 대꾸도 않고 주머니에서 호두알만한 알사탕을 꺼내 쥐어줬다. 군말 늘어놓지 말고 산이나 바라보다 내려가라는, 산처럼 말없이 살라는 묵언(默言)의 알사탕이었다.

 

스님이 불일암 생활을 청산하고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돌연 산골행을 감행한 것도 수행정진에 대한 그의 열정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상좌들의 보살핌을 마다하고 나는 혼자 죽 끓여 먹을 팔자라며 굳이 불편하고 힘겨운 만년의 삶을 택한 것은 무엇보다 수행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이름값때문에 관광지가 되다시피 한 불일암에서는 더 이상 수행다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하라는 불교의 요체를 참으로 치열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찬사를 받는다.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산 속 오두막 생활을 기꺼워하고, 그처럼 수행에 진력하면서도 중은 밥값을 해야 한다며 때때로 산을 내려와 맑고 향기롭게중생을 보듬기 때문이다.

 

 

--1999년 월간 신동아에 게재된 법정 스님에 대한 글 중에서 --

 

 

 

**: 정채봉. 전남 승주군 해룡면 신성리 출생

1966년 광양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1978년 샘터사에 입사하여 작고할 때까지 기자, 편집부장, 기획실장, 이사 등을 지냈다.

 

참고:법랍法臘

불가에서 속인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해부터 세는 나이, 좌랍(坐臘계랍(戒臘하랍(하랍법세(法歲)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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