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벤 무소유 삶
작성자  여울목 작성일  2016-12-15 pm 07:32 출력하기 메일보내기

몸에 벤 무소유 삶

 

이곳에서 변변한 가구나 생활도구도 없이 자급자족해 살면서도 그는 늘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찻잔 몇 벌, 책 몇 권이 굴러다녀도 너무 많다며 부담스러워한다. 내가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이들은 좋은 친구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살려는 데 자꾸만 뭔가 갖다 주는 사람은 달갑지 않은 친구다라고까지 한다.

 

그래서 더러 참지 못할 만큼 많다고 여겨질 때는 주변을 정리, 읽고 난 책이나 거절하지 못한 선물은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편지 같은 것들은 태워 없앤다. 부엌에는 반찬은 3가지가 넘지 않게라는 부엌훈을 써 붙여놓았다.

 

스님은 길상사의 회주이자 창건자이면서도 이 절에 자신의 방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어쩌다 길상사를 찾은 날이면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절에서 머물지 않고 산중의 오두막으로 총총히 돌아간다.

 

지난해 자신의 출판사에서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를 펴낸 김형균씨는 스님에게 밀짚모자를 선물했다가 혼이 났다. 스님의 밀짚모자가 하도 오래 되고 낡아 군데군데 구멍까지 났기에 새 모자를 사드렸더니 있는 모자를 뭐하러 샀는가. 자네나 쓰게하면서 한사코 받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쓰고 다닌다.

 

정찬주씨도 잊지 못할 추억을 갖고 있다.

스님이 불일암에 계실 때 가끔씩 찾아 뵈면 국수를 삶아주시곤 했습니다. 스님 국수 삶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다 암자의 물이 좋아 맛이 기가 막혔죠. 하루는 스님이 삶은 국수를 우물물에 담가 식히는데, 국수 두어 가닥이 그릇에서 흘러 떨어졌어요. 그걸 보시더니 얼른 주워서 드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러세요. ‘신도들이 나더러 수행 잘하라고 보내준 정재(淨財)인데, 국수 한 가닥도 가볍게 여겨선 안 되지’.

 

그렇다고 스님이 실천하는 가난한 일상이 궁상맞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소박한 삶 곳곳에 독특한 천연의 운치와 지혜가 배어 있다. 스님이 손수 지었다는 불일암도 그러했다. 정채봉씨에게 특히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불일암의 뒷간이었다.

 

들어가 앉으면 듬성듬성하게 끼워놓은 창살 사이로 대나무 밭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눈만 즐거우라고 그렇게 만든 게 아닙니다. 대밭에서 불어온 신선한 바람이 창살 사이로 들어왔다 화장실을 한 바퀴 돌아 나가게 한 통풍시스템이죠. 벽에 걸린 대나무통에는 늘 붉은 참밀 가지 하나가 꽂혀 있어 스님의 단순하고도 은은한 미적 감각을 보여줍니다.

또 화장실 한쪽에는 바구니가 놓여 있는데, 그 안에는 낙엽이 가득 들어 있어요. 볼일을 보고 나서 그 위에다 낙엽을 한 줌 떨어뜨리면 보기 흉한 것도 가려지고, 낙엽과 변이 함께 잘 삭아 거름이 되지요.”

 

주어진 가난은 극복해야 할 과제지만,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淸貧)은 절제된 아름다움이며 삶의 미덕이라는 스님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무소유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서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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